오펜하이머(OPPENHEIMER) 후기

CREATED | Created in 2023.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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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 본 글은 오펜하이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람하지 않으셨다면 보지 않으시는걸 추천합니다.





천재 물리학자라고 불린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다루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기 영화 "오펜하이머"를 최근 감상했습니다.
저 자신은 극장에 가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극장이 멀기도 하고, 언젠간 "볼 기회가 생기겠지" 마인드이기 때문에 극장에는 크게 가지 않는 편입니다.

사실 마지막으로 극장을 갔을 때가, 10년도 더 되었네요.

그러던 중,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으로 오펜하이머(OPPENHEIMER)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꽤나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테넷", "메멘토", "인터스텔라" 등으로 크게 유명한 감독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추구하는 영화상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그만이 할 수 있는 연출에 매료되어 팬이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 또한 그런 이유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그런 시각으로 신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검색하였는데, 장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기물"

전기물?
그 크리스토퍼 놀란이?
정말?

사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역사를 다룬 영화를 제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덩케르크"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표적인 역사 영화입니다.

그러한 놀란이 "인물"을 회고하는 "전기"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가 2월이였습니다. 7월 개봉이라는 소식을 듣고 허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8월 15일 개봉이라는 소식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지만, 오히려 8월 15일이라 더 뜻깊다고 생각하고 보기로 결심하였고
결국 개봉일엔 보진 못했지만, 사정상 자그마한 일반관에서 주말에 느긋하게 감상하고 왔습니다.

영화에 대해



오펜하이머는 실존 인물 "로버트 줄리어스 오펜하이머"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오펜하이머는 복잡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로, 영화 내에선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장면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액자식 구성을 열어가며 스토리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초반부 오펜하이머는, 타지의 먼 곳에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실험물리를 공부하며 교수에게 핍박당하고 학우들에게 무시당하는 학생이였습니다.
우울증과 향수병에 시달리던 오펜하이머가, 결국 면전에서 오펜하이머를 핍박하고 망신을 주게 되고, 그가 존경하느 닐스 보어의 강연을 듣지 못하게 막자 오펜하이머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교수의 사과에 시안화수소를 주입합니다.

그날 밤, 닐스 보어의 강연을 듣고 뒤척이던 오펜하이머는 사과를 떠올리게 되고, 학교가 문을 열자마자 급하게 뛰어가 사과를 없애려 합니다.
하지만, 닐스 보어가 그 사과를 먹으려고 하고 있었고, 오펜하이머는 닐스 보어에게서 사과를 빼앗고, 닐스는 그런 오펜하이머에게 이론 물리를 공부하라며 추천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론 물리 - 특히 그 당시 새로 대두된 물리학인 양자역학을 공부한 오펜하이머는 고향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엄청난 교육열을 보이는 명 강사로 미국에서의 양자역학을 뿌리내리게 합니다.

오펜하이머의 청년 - 맨해튼 프로젝트 전을 다룬 영화의 초반부는 상당히 흡입력 있었습니다.
직관적인 연출과 사람 "오펜하이머"가 나약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명석한 "미국 양자역학의 시초"가 되는 과정을 매우 짧지만 순식간에 흡입력있고 설득력있게 풀어냅니다.

오펜하이머의 후반부를 붙잡히게 하는 공산당 이력과 여자 편력 문제 또한 매우 노골적으로 묘사합니다.
이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일부 연출이 있지만,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매우 단적으로 묘사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메카시즘 광풍에 휘말린 오펜하이머를 묘사하기 위해 초반부에 좀 노골적인 표현들을 많이 섞었고 좀 불편할 수 있지만,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이만큼 단적으로 설명하긴 처음입니다.
그의 청문회 장면에서 오펜하이머의 옷을 벗기고, 그의 아내 앞에서 바람 상대와 서로 관계를 맺는 연출로 오펜하이머에게 사람들이 어떤 존재였는지 보여주는것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오펜하이머가 선역이라면, 빌런도 있어야겠지요.
오펜하이머 초반부부터 나왔던 AEC의 의장, 스트로스 제독이 그 빌런입니다.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정치질로 몰아세우며 몰락시키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감정선의 싸움에서 느껴지는 놀란의 연출과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날선 싸움, 오펜하이머의 주변 인물들의 배신, 그리고 파멸을 지루하지만 반대로 흡입력있게 그려내었습니다.

스토로스와 오펜하이머의 감정선을 넘나드는 노골적인 연출은 당연히 합격점입니다.
시간순으로 다시 곱씹어보면 결국엔 단순하면서도 처음 보면 이게 무엇인지도 모를 복잡한 편집을 통해 오펜하이머의 과거를 액자식으로 돌아보는 한편 스트로스의 오버랩시키며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그 둘을 아름답게 풀어낸 것에 감탄했습니다.

인트로부터 오펜하이머는 "분열" 이라는 문구가 뜨고,
스트로스는 "융합"이라는 문구가 뜨게 됩니다.

이 연출은 이 둘이 서로 완벽한 안티테제를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핵융합과 핵분열, 서로 상충되는 두 정반대의 반응을 빗대어 인물을 표기합니다.
영화 내내 이 둘 사이를 쉴새 없이 오버랩하며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어디까지 궁지에 몰릴 수 있는지, 스트로스라는 사람의 야망과 몰락이 어디까지인지,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몰락을 함께 교차해서 보여줌에 감탄했습니다.

스트로스는 "흑백"으로, 오펜하이머는 "컬러"로, 서로 두 시선을 극명하게 갈라놓습니다.


작중에서 흑백으로 묘사되는 스트로스 제독


오펜하이머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대척점을 바라보는 스트로스 제독과 서로의 상충하는 시선은 서로를 파멸에 이끌 뿐만 아니라 세계를 파멸로 이르게 합니다.

사실 제일 기대했던 부분은 트리니티 프로젝트 부분이지만, 이 부분은 생각보다 많은 연출을 스킵했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로스 앨레모스의 후반부 연출, 특히 오펜하이머가 자신의 죄를 자각하기 시작할 때의 연출은 최고였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들어낸 폭탄이, 그것이 사람을 대량 학살했다는 현실을 투하 전부터 어렴풋이 느꼈지만, 직접 떨어진 이후에는 아예 직접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오펜하이머가 연설하는 장면 - 연설대가 핵폭발에 휘말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피부가 녹으며 죽는 연출.
오펜하이머의 공포와 영광이 순식간에 반전되고 양면성을 띄며 연결됩니다.

이 이후로 오펜하이머는 수소탄 개발을 반대하며 나서게 되고, 찍히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변하게 되는 가장 큰 변곡점이자, 영화의 진정한 의미가 시작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이 장면 이후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핵폭발이 일어난 후 잦아든 버섯구름" 처럼요.
오펜하이머는 그 누구보다 원자폭탄이 가져올 평화를 믿었지만, 이는 상호확증파괴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진 평화가 될 것이였고, 또한 자신이 바라는 이상은 절대 찾아오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스트로스와의 전쟁이 시작되는데, 스트로스가 몰락시키려는 오펜하이머와 오펜하이머로 인해 몰락하는 스토로스가 앞 장면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또 다른 백미로는 오펜하이머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장면이였습니다.
그로브스 장군의 명령에 따라 과학자를 섭외한 오펜하이머는, 장교복을 입습니다. 군 규정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가장 절친한 친구, 이지도어 라비는 이를 비판하며 오펜하이머에게 "과학자"답게 굴어라, "군인 흉내"가 아니라. 라고 말합니다.
이 이후로 오펜하이머는 중절모와 양복을 입고, 트리니티 프로젝트를 주도합니다.

중간중간 에드워드 텔러가 트러블을 일으키며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나가려 할 때에도, 그를 진지하게 대했고, 에드워드 텔러가 훗날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았음에도 오펜하이머는 이를 넘겼습니다.
아인슈타인과의 대면에서도 그의 카리스마가 잘 드러나죠.

이로써 철인같은 인간 오펜하이머와 유약하고 우울한 인간 오펜하이머, 그리고 결점 많고 삐툴어진 인간 오펜하이머, 그리고 무너져가는 일그러진 영웅 오펜하이머까지.
놀란은 이 영화에서 수 많은 오펜하이머의 모습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가장 인상깊던 부분은 로렌츠의 틀린 증명이 결국엔 다른 형태로 맞아떨어진다는 부분을 영화의 수미상관으로 보여준 장면이죠.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트리니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전, 리틀보이 폭탄을 설계하기 전 이론적 배경을 검토하기 위해 대화하던 중 로렌츠가 핵분열 반응이 멈추지 않아 지구의 대기를 모두 태워버릴 가능성을 공식으로 증명합니다.

이를 믿을 수 없던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에게 검증받으려 하고, 아인슈타인은 씁쓸하게 오펜하이머를 돌려보냅니다.
트리니티 프로젝트 이후 "대기가 폭발하진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였고, 오펜하이머에게 그로브스는 "그런 것에 왜 걱정했냐"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기의 완전연소"는 물리적인 반응이 아닌, 인간의 업보로 돌아옵니다.
영화의 인트로에서 나오는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대담, 스트로스가 자신을 모욕했다 생각하고 앙심을 품기 시작한 그 순간.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에게 "대기의 완전연소"라는 형태가 "상호확증파괴의 핵전쟁"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눈을 질끈 감습니다.

오펜하이머는 대기의 완전연소 가능성의 증명이 틀렸다고 했지만, 오펜하이머는 틀렸습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폭탄으로 완전연소 해버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그 폭탄으로 자기 자신을 완전연소 해버렸습니다.
스트로스는 그 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를 위해 평생을 복수에 사용하지만 그 자신도 완전연소합니다.

소름끼치는 수미상관과 함께 오버랩되는 핵미사일 씬과 터져나가는 미사일, 그리고 굉음과 함께 잦아드는 스크린은 이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오펜하이머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평가



오펜하이머는 놀란의 감독 작 중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입니다.
전기 영화라는 특수한 장르와 자칫 오펜하이머가 아닌 "트리니티"나 "맨해튼"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할 뻔한 영화를 "오펜하이머"라는 제목 안에서 가두어 놓습니다.

놀란만의 미장센으로 그려낸 비주얼은, 핵폭발 장면이 아닌 이상은 흠 잡을 곳이 없고, 젊은 시절 오펜하이머가 보던 우주의 환상은 감탄의 연속이였습니다.

오펜하이머와 그의 기구한 인생, 오히려 오펜하이머 찬가라고 해야 맞을법한 이야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꼭 블루레이같은 영구소장 매체로 가지고 싶은 영화" 라고 생각합니다.

놀란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상당한 전환점이 될 것이고, 우리의 회고에서도 큰 전환점이 될 영화입니다.

다만, 중간 중간 들어가는 노골적인 노출 씬이나 묘사가 가족과 보기엔 매우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오펜하이머는 하나의 완성된 오펜하이머 비극이자, 오펜하이머 찬가입니다.


알버트, 제가 예전에 말했던 계산 기억나세요? 파괴의 연쇄반응 말입니다. 그게 시작된 거 같아요.
-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中)